기피하고 포기한 학생들을 모아서 가르친 적이 있었다.
학원비는 받았기 때문에 학원에서도 처치 곤란이었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그 학생들은 수업을 들을 권리는 있었으나,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들로 인해 학원도 학부모들의 눈치로 곤란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괴로워 하셨다.
처음 학생들을 대면했을 때 그동안 수업시간에 정상적으로 따라오지 않아서 인지 온갖 기괴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 기본(쌓아 올린 돌)이 없는데 어떻게 성적을 낼 수 있을까? 걸어서 가든 뛰어서 가든 이미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목적지를 찾아서 가고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애시 당초 걸어갈 생각이 없었다. 이번 생은 공부와 인연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목적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그 동안 뛰어가라고 다그친 것이었다. 그 골이 깊고도 깊어서 이제는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했다. 이 큰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 잡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솔직히 수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학생들의 기괴한 생각들을 정상적으로 돌리고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대로 인생을 살아가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입장이 달랐다. 그 분들은 더 기괴했다.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절대적인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0kg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비만 학생을 한 달 만에 40kg 감량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다. 공부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대답을 그분들은 애초에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학생들 보다 부모님들이 더 문제였다.
편법인지는 알지만 시험 요령을 가르쳤다. 시험 성적을 올려서 공부에 재미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와서 고백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냐면 수학에서는 분수를 계산 못했었고, 영어에서는 기본적인 동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사실 답은 정해져있었다. 시험 성적을 올려도 욕을 먹고 못 올려도 욕을 먹는 싸움이었다. 시럼 성적을 올리면, 왜 자신의 아이가 반에서 평균이 되지 못했냐고 욕을 먹을 것이고, 안오르면 당연히 욕먹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이대로 내려버두지는 말자. 어차피 이번만 하고 학원을 떠날 생각이었다. 한번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1. 총체적 난국
공부 이야기만 해도 딴 생각이다. 그도 그걸 것이 태어나고 대부분의 시간들을 멍 때리기 또는 딴 짓만 했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들을 통해 버는 돈으로 노래방이나 당구장을 갔다. (단! PC 방은 금물이다. 여기서는 유대감이나 교감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학원과 부모님께는 야외 수업이라고 하고 그렇게 1주일 내내 놀았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게임에서 점수가 낮은 사람이 돈을 내는, 돈 내기도 하였다. 공부를 잘 해볼 생각이 없는지 한 번씩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새끼들 지랄하고 있다.” 라고 생각을 했다. 연기력이 너무 좋다. 반성하는 표정과 열심히 하겠다는 표정의 달인들이다. 영화에서처럼 선생님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딴 것은 존재 하지 않았다.
2. 시험지에 낙서하기
시험은 얼마든지 틀려도 되지만 “빈 시험지를 들고 오는 놈은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 라는 원칙을 세웠다. 문제를 풀 자신이 없으면 낙서라도 하자
시험지가 있으면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는 빨간 펜으로 “0” 긋고 도저히 못 풀겠다는 문제는 “X”로 표시하고 “X” 문제는 보지도 말라고 했다.
(출제자는 관대해서 반드시 아는 문제는 던져 준다.)
3. 정답 찍는 법 알려주기
질문지는 정상적인 문제와 꼬여 있는 문제 2가지 분류로 존재한다.
정상적인 문제는 전체 문맥 즉 문장을 읽으면 되고 꼬여 있는 문제는 단어를 보고 답을 정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한번 찍은 답은 절대 바꾸지 말아야 한다. 찍는 것도 소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문제와 아는 문제에 표시 했던 것처럼 정상적인 문제는 “0”로 표기 하게 하고 비정상 적인 문제는 “X” 표기 하게 시켰다.
그리고 정상적인 문제는 느낌 그대로 정답을 쓰게 하고 비정상 문제는 핵심 단어를 체크 하게 한 후에 그 단어와 관련된 답을 찍게 하였다.
비정상 질문지 예시)
영어 문제에서 BUT 뒤에 정답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철수는 오전에 야구를 했다. 그렇지만 오후에는 공부를 했다.
철수가 오후에 한일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영어 듣기 평가 할 때 초반 “Baseball” 기가 막히게 들린다. 그렇지만 오후에 “공부를 했다.” 에서 공부(Study) 라고 예기를 하지 않는다. Physics and society (물리, 사회) 어려운 단어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재미없는 과목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 성적이 나빠서 두 과목을 보충해야 한다. 라고 공부를 하겠다를 돌려서 이야기 한다. 보충 = 공부가 되는 것이다.
시험 문제를 찍어서 기존 자신이 공부한 것보다 더 높게 점수 나오게 하면, 아이들은 순수해서 맹목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문제 출제를 자주하면 문제를 안 읽어도 정답이 보인다.
4. 총 과목의 평균을 올리기
수학, 과학 기본 암기가 필요한 것은 단기간에 불가능 하다. 접자.
그리고 국어 사회 윤리와 같은 것들로 전체 평균을 올려 버리자. 그러면 반 등수가 올라간다. 반등수가 올라가면 자신이 완전 빡 대가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공부에 욕심이 생긴다.
5. 인생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10대의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한다. 유치원 때부터 정신 차리고 시작하면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고 포기 하는 것이 맞다.”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이성 친구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욕을 먹지 않는 시간이 20대 초반이다. 그 좋은 “20대 초반의 삶이 곧 온다.” 라고 이야기 해줬다. 다시 태어나면 또 무료하게 18년 동안 멍 때려야 하는데 1,2년만 있으면 20대 초반의 삶을 즐길 수 있는데 미쳤다고 다시 태어나느냐 라는 나의 정의에 그렇게 생각해보니 다시 태어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이해시켰다. 다시 태어나서 18년을 노력 하느니 차라리 2년을 노력하는 것이 훨씬 개이득이다.
6. 유능한 선생님은 결국 결과로 말을 한다.
성적은? 그리고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성적은 적당히 나왔다. “공부를 하면 되기는 되는 구나.” 라는 맛만 보여 주었다.
학원을 나와서 그 이후에 학생들의 삶은 모르겠다. 대학가서 잘 놀고 있다. 라는 연락을 이따금씩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동기를 제공 할 뿐 그 이후의 것은 그 친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성적은 많이 올랐다. 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부모님들의 욕구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수학적 사고가 자라려면 1년은 성적을 포기 하셔야 한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진짜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써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한데, 부모님들이 학생들 보다 오히려 인내심이 없다.
7. 결론
꼴찌의 반란은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변했다
“인생은 요령이야.”
노력하는 놈들 따라가려면 공부를 재미있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낙오한 놈들이 보이거든
그 놈 재끼면 얼마 안 있다가 노력하는 놈 발자국을 볼 수 있을 거야. 그 발자국만 놓치지 말아봐. 그러면 결과가 보일 거야.
선생님 언제 노력하는 그 놈을 재낄 수 있어요?
멍청아 우리가 돈 벌려고 공부하지 공부하려고 공부하냐?
결국 나중에 그 놈들 보다 돈 많이 벌면 이기는 거야